2021.8.24.(화)일자 조선일보 부고란에 이수인 선생님의 부음이 실렸다.
' 동요 '둥글게 둥글게' 작곡가 이수인
'앞으로', '둥글게 둥글게' 등 동요 500 여곡을 작곡한 이수인(82세)씨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중략)
유족으로 수필가인 아내 김복임 씨와 아들 문규(바이올리스트)씨가 있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6 시. '
우리 시대 주옥같은 선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가곡 작곡가 이수인 선생님이 돌아 가셨다.
애통한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드리며, 생전의 선생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1. 신문에서 동요작곡가로 표기한 것은,
지난 1991년5월에 동요작곡가 13명이 모여 KBS어린이 합창단 단장이신 이수인 선생님을 회장으로 "파랑새창작동요회"를 구성하여
(1) 매년 각종 동요제에서 발표한 창작동요 중 엄선한 수십 편을 '파랑새 노래집'으로 발간하고, 이 곡들을 선생님이 편곡하여 15-20 인조의 KBS관현악단 반주로 된 곡을 카세트테입과 CD로 제작하여 지금까지 30 여년간 1000 여 곡을 전국에 배포하여 왔다. 초기에는 후원자가 없어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만들었다.
(2) 1995년부터 '(주)코오롱매트'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협찬을 받아 전국 5000 여 초등학교에 무료로 음반을 배포.
(3) 외국 교민사회(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중국연변)에 10여회에 걸쳐 30 여명으로 구성한 연주단을 파견하여 신작 동요와 애창동요를 연주하여서, 이민생활에 지친 교포들에게 향수와 위로가 되는 동요를 꾸준히 보급.
그리하여, 동요가 외면 당하는 세상에서 '어린이를 위한 동요보급'과 '동요의 저변확대'를 위한 업적이 워낙 크기에,
동요작곡가로 소개한 것은 당연하다.
2. 그러나, 우리가곡의 세상에서 보면 이수인 선생님은 독보적인 영역이 있다.
선생님은 가곡을 '시를 노래로 만든 시(詩)노래'라고 정의하신다. 그리고 동요나 대중가요와 구별이 되는 '성악 발성으로 부르는 노래', '예술적인 의도로 창작한 노래' 라고 하신다.
선생님의 가곡을 부르다 보면, 노래에서
(1) 음표들이 저마다 그렇게 자리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이 보이고,
(2) 선율은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고,
(3) 구조는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평화를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을 한국의 슈베르트[ Schubert,Franz Peter]라고 부른다.
3. 이수인 선생님이 지나오신 시간들
1939.1 경남 의령에서 출생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때 마산으로 이주
마산중.마산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대 작곡전공으로 졸업(2년제)
1960경 대학졸업 직후 마산 성지여고 음악교사로 부임
1년 뒤 마산제일여고 음악교사로 전직
1967 수필가 김복임 님과 결혼
1968 KBS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서울로 이주
1980 KBS성인합창단 지휘자로 보직변경
1981 KBS어린이합창단 단장으로 복귀하며 어린이합창 지휘
2008 KBS어린이합창단 단장직 퇴임
1991년 결성한 '파랑새 창작 동요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마포구 성산동 성미마을에서 거주중.
2021.8.22 향년 82 세에 영면하심.
4. 이수인 선생님의 일상과 생각들.
가. 선생은 5남4녀중 7째 4남으로 태어 났다. 초등학교 교장이신 아버님을 따라 거의 매년 경남지방 곳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2학기때 마산으로 이사와서 도시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2년 뒤 6.25전쟁중에 아버지가 돌아 가시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은 매우 가난하게 성장했다.
나. 6.25 당시 국민학교 교장이시던 학교를 군인들이 점거하자, 학교의 재산목록 1 호인 피아노를 사택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음악을 접하는 계기가 된다. 선생님은 "피아노는 나의 온 정신을 빼앗아 시간나는대로 피아노에 앉았다. 중학시절에 독학으로 연주와 작곡을 공부하여 중 3 때 작곡한 가곡은 음악잡지사 콩쿠르에서 입선하여 출판하였다."
다. 고교졸업 당시 대학진학을 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라벌예대를 찾아 갔고, 수석으로 장학생이 되어 학비전액을 지원받으며 졸업하게 된다.
성장기의 가난함이 삶을 지치게 만들었는지 선생의 회고담에서 " 대학을 들어 갈 때도 특별히 음악을 공부해야 할 절실함은 없었고, 다만 음악을 좋아한다는 정도" 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입학후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을 스승으로 만난 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김동진 선생은 충무로에서 제작하는 영화의 영화음악 대부분을 도맡았는데, 조수가 된 이선생은 이때 숱한 밤들을 새우며 사보(모두가 수작업이다),편곡을 하며 김동진 선생의 수제자 수업을 받게 된다.
라. 이수인 선생에게도 시련기가 있었다.
1980년 KBS성인합창단으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대중가요를 지휘하고 편곡하게 되니, 선생은 전공이 바뀌어 버렸다.
이때의 심정을 부인 김복임님이 쓰신 수필에 잘 나와 있다.
"---, 1980년 언론 통폐합때 TBC에서 오신 정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큰 힘을 등지고 이 선생이 자리하고 있던 어린이 합창단의 단장이 되었습니다. 이수인 선생은 자기 분야도 아닌 대중가요로 밀려 났습니다. 사표쓰라는 말이나 다름없지요. 이 선생은 혼신을 바쳐 묵묵히 일한 대가가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꿋꿋하게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분은 음악으로서는 이수인 선생님의 능력을 넘지 못하겠는지 일년만에 물러나고,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 갔습니다.---"
마. 어린이합창단은 매주 월.화.금 17:00-19:00 KBS본관에 모여 연습을 하였고, 나머지 시간은 작곡, 편곡을 하였다.
KBS관현악단의 편곡을 이 선생이 하게 되는데, 이 때의 일상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신다.
"-- 평생 억울한 것은 별로 없는데 괴로운 것은 있었지. 지금은 안 하지만 30년 전만해도 관현악 편곡을 나한테만 시키는 거야. 그것도 급하게. 그러면 관현악단의 연습시간에 맞추느라 시간에 쫒겨 밤새 작업해야 해요. KBS관현악단은 내 편곡만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늦기라도 하면 막 욕을 하고 그랬어요. 그럴 때가 힘이 들었지. 덕분에 편곡에는 전문가가 되었지.--"
"-- 며칠 밤새고 고생할 때는 갈등이 일어 다음부터는 다시 안해야지, 그러다가는 아니 이건 내 일이다 하고서는 계속하였다."
"사실 편곡이 굉장히 어렵다고. 편곡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악기도 바이올린은 이렇고 클라리넷은 이렇고 오보에는.... 우리는 경험이 많아서 빨리 했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
바. 아내 김복임님의 회고이다.
"-- 평소에 파랑새창작동요회 회원들이 집에 찾아 오면 늘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살아 있을 때 편곡에 대해 배워 두라' 하셨고, 몇 명이 시도해 보았지만 힘들다고 포기해 버려 너무 안타까왔다."
파랑새 회원인 정연택 교감은 "일부 선생님들이 편곡을 하고 있지만 이수인 선생님의 감각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했다.
사. 소프라노 신영옥, 조수미도 이수인의 KBS어린이합창단 출신이다.
이 선생은 우리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며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음악가요, '한국의 슈베르트' 라고 칭송받지만 현실은 무관의 제왕이다. KBS어린이합창단 단장이라는 직함 외에 어떠한 직급이나 보수를 받은 적이 없다. 70년대 초반 숭의여전에 출강한 적은 있지만, 이수인 이력의 어느 줄에도 쓰는 일이 없다.
아. 이 선생은 음악과 함께 한 삶이 늘 행복하다라고 하지만, 그의 집사이자 수행비서인 부인 김복임님은 " 선생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동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5. 작곡의 세계
가. 가곡; 60 여곡(자료에 따라 100곡, 200곡 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유는 누군가가 자작시를 들고와 "선생님, 이거 어떻습니까"하면 "어, 좋은데."하고 즉석에서, 또는 며칠 뒤에 작곡하신 악보를 줘 버리곤 하시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선생님이 여러곳에서 애착을 가지고 소개한 곡은 '별','고향의 노래','내 맘의 강물', '석굴암' 이다.
동요; 500 여곡 (자료에 따라 1500 여곡이라고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둥글게 둥글게','앞으로','방울꽃','솜사탕'등이 널리 애창되고 있다.
나. 가곡이야기
"별" ; 1962년 작곡(23세)
마산제일여고에서 음악교사로 재직중 밤 늦도록 피아노를 치다가 퇴근하는데, 달없는 하늘에 별이 유난히 반짝이자 학생시절 교과서에 실려 애송했던 이병기님의 시조 '별' 이 떠 올랐고, 곧 교실로 되돌아가 피아노를 치며 부르니 가곡"별"이 되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 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 선생은 그 때를 회상하며 '시가 작곡가를 만나면 노래가 된다.'라고 하였다.
노래는 1970년 이후 KBS어린이합창단의 합창으로 전파를 타고 세상에 나와 널리 부르게 되었다.
"고향의 노래" ;1968년 작곡 (30세)
서울로 올라와 부인과 함께 서강 굴다리 부근 단칸 셋방에서 생활을 할 때다.(여기서 남산 KBS까지는 약 5Km 거리인데 걸어서 출퇴근했다. 지하철은 없던 시절이다.) 이 선생은 도회지 부적응과 향수병으로 우울하게 지낼 즈음, 어느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마산제일여고 시절 단짝이던 국어교사 김재호 시인으로부터 온 엽서에 시가 있었다.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 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엔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친구의 우정과 고향의 숨결이 온 몸을 감싸며 다가왔기에 단숨에 곡조를 붙인 것이 노래가 되었고, 테너 엄정행이 불러 세상에 나왔다.
해마다 명절이면 수천만명의 귀성행렬을 이루는 모든 타향살이들에게 상실의 향수를 매우 따뜻하게 보담아 주는 노래가 되어, 이제는 많은 이의 가슴 속을 저리게 파고드는 정다운 가곡이 되었다.
"석굴암" ; 1976년 작곡 (37세)
마산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서점에서 진주 삼현여고 교사인 최재호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다가 그속의 '석굴암'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었다. 그 뒤 서울에서 지내던 어느날 문득 고교시절 수학여행으로 토함산 숲길을 걸어 올라 석굴암 앞에 섰을 때 온 몸에 황홀히 전해온 환희의 이미지가 떠 오르자 옛날의 그 시와 지금의 악상이 겹쳐 지면서 곡을 만들어 버렸다.
" 내 맘의 강물" ; 1981년 작곡 (42세)
가곡을 작곡하려 하다가 마땅한 가사가 없어 먼저 멜로디를 대충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는 가사를 찾았다. 수없이 멜로디를 떠 올리며 골몰하던 중 문득 자신의 일생이 마치 ' 옛날은 지나가도 내 마음에 강물은 흐른다.' 로구나라는 구절이 떠 오르자 피아노 앞에 앉아 시를 만들고 곡조를 다듬어 노래를 완성하였다.
이 선생은 뒷날, "가사도 내 기분에서 나오는 거야. 내 감정을 다른 이에게 설명을 해 줘도 내 맘에 드는 가사를 만들어 내지 못 해요. 내가 시인은 아니지만 남들이 들어 보더니 '됐다'라고 하기에 작곡을 마무리 했지."라고 회고 한다.
이 노래는 테너 팽재유가 불러서 1991년에 KBS FM신작가곡으로 전파를 탄 뒤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다. 동요이야기
이수인 선생은 동요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한다.
" 동요는 아동가요의 준말이며 '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 입니다.
동요는 동심의 노래이며 어릴적 뛰놀던 고향의 노래입니다.
동요는 시노래이며 마음의 노래입니다.
동요는 집중과 순화의 노래이며 위안과 치유의 노래입니다.
오늘도 나는 참으로 행복한 순간을 만나기 위하여 피아노에 앉습니다." (2008.5.)
"방울꽃" ; 1965년 작곡 (26세)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쪼로롱 방울꽃이 혼자 폈어요
산새들 몰래몰래 꺾어 갈래도
쪼로롱 소리날까 그만 둡니다
산바람 지나가다 건드리면은
쪼로롱 방울소리 쏟아 지겠다
산노루 울음소리 메아리치면
쪼로롱 방울소리 쏟아 지겠다
아동문학가 임교순이 춘천에서 문인생활을 하던 중 '방울꽃' 시를 엽서로 마산의 이 선생에게 보냈고, 이를 받아 본 이 선생은 지체없이 작곡에 들어 갔다. 이수인 선생의 작곡스타일은 가사를 4-5일 동안 되풀이 읽다가 곡조와 섞여 노래가 나오면. 피아노 앞에 앉아 불과 20-30분 안에 작곡이 끝난다.
현재 '방울꽃' 노래비는 충남 보령시 개화예술마을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지금껏 한번도 만남이 없다고 한다.
"앞으로" ; 1969년 작곡 (30세)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거목이신 석동 윤석중(1911-2003)님이 1969년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자 발음이 비슷한 '앞으로' 라는 동시를 지었고, 이 글을 작곡해 보라고 이 선생을 찾아 왔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문화계의 어른(무려 30년선배)이 손수 들고 온 가사이니 이 선생은 정성을 다 해 작곡을 하였고, 결과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널리 퍼져 나가는 명곡이 되었다. 이 선생은 평생 작곡한 노래중 가장 마음에 남는 곡이라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
"둥글게 둥글게" ; 1970년 작곡 (31세)
KBS어린이합창단을 지휘하며 기존의 몇 곡 안되는 노래를 계속하다보니 나중에는 더 이상 무대에 올릴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동요를 작곡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노래이다.
이제는 이수인 선생의 대표곡이 되어 버린 이 노래는 레크레이션에 알맞게 되어서 당시 이런 스타일의 노래가 없던 터라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 30대 이상 세대라면 어릴적 소풍가서 '수건돌리기' 하면 자연히 주제곡으로 삼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6. 애창되지 않는 좋은 노래 "석굴암"
수 천 곡이나 되는 우리 가곡 중에 애창되는 노래는 너무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부르지 않으면 귀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곡 '석굴암'도 숨어 있는 좋은 노래중 하나다.
이수인 선생은 '석굴암','보문사','수덕사' 등 절을 소재로 여러 편의 곡들을 만들었으나, 노래의 주 수요처인 교회성가대에서 선곡을 하지않는 바람에 거의 파묻혀 버렸다. 그런데 '석굴암' 만은 민족적인 정서가 살아 있고 스케일이 크고 깊어서인지 많은 연주회에서 연주곡으로 선정하였기에 이제까지 널리 부르는 가곡이 되었다.
작곡자인 이수인 선생이 이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상세히 이야기 한다.
(1) 이 노래를 잘 부르려면 토함산을 느린 걸음으로 걷는 기분으로 불러야 하는데, 노래 속에 나누어진 세 부분을 잘 표현해야 한다. 곧,
처음은 감정을 넣어 곱게 부르고,
단조로 바뀐 중간 부분은 차츰 감정을 고조 시키면서 애조를 띄우고,
끝부분은 화려하게, 특히 한국인의 긍지로 자신감 있게 부른다.
(2) 중간부분의 '--감도는가, 막달아' 는 중간에서 끊지 말고 이어서 강조한다. 여기가 이노래의 고조부(climax)이기 때문이다.
(3) 마지막의' 웃음마저 좋으셔라.' 는 박자에 구애받지 말고, 한 음 한 음 짚어 가듯이 확실하고 힘차게 끝맺는다.
(4) 이 노래는 어려운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의외로 쉽다.
고음부분이 몇 군데 있으나, 시작할 때 미리 음을 낮춰 잡으면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기백있게 소리를 쭉 쭉 뻗는다.
(5) 가사중 맛깔스런 시어들이 있는데,
'등걸' ; 줄기를 잘라낸 나무의 밑둥.
'자로 앞질러' ; 쭉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스러진' ; 형체가 차츰 희미해지며 사라짐.
'막달아' ; 가다가 앞이 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조으셔라' ; 좋다, 또는 졸다.
참고자료; 1. 내 맘의 강물(교육과학사, 2012.10.20.)
2. 카페 이수인의 가곡사랑
3. 카페 정다운 가곡
4. 그 외 가곡관련 카페 여러곳.
작성자 김영산; 2021.8.26. 끝.
** 2020.10.24. 인터넷 검색 중에 '고향의 노래' 소갯글에 믿기 힘든 댓글이 달려서 퍼 왔다.(사실여부는 알 수 없음)
출처; nocutkorea.egloos.com/2545422 (khan 이정식, 2015.6.20. 23:41)
진짜작곡가딸 2017/09/25 09:51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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