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로마인들이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Saturn)를 기리는 축제에서 유래했다. 낮이 밤의 시간을 이기기 시작하는 절기인 동지(冬至) 즈음에 열리는 축제는 사회 질서가 뒤바뀌는 쾌락의 시간이다. 노예도 자유롭게 주인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주인이 거꾸로 노예에게 봉사하는 난장을 벌였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에도 이 풍습은 계속됐다. 이교도의 축전을 금지할 수 없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게 크리스마스다.
기독교 시대인 중세에서 크리스마스는 성탄절로 자리를 잡았지만, 먹고 마시는 축제의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교도 혁명 때 위기를 맞았다. 왕정을 폐지한 크롬웰은 1652년 크리스마스도 불법화했다. 지나치게 문란하고 영혼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왕정복고를 결의했고, 찰스 2세의 즉위와 함께 크리스마스도 부활했다.
한국인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성과 속이 기 묘하게 어우러진 날이다. 가장 놀기 좋은 날이고 가장의미심장한 날의 대명사다. 영화가 그걸 가장 잘 표현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가 있고, 얼마 전 '우주의 크리스마스'(감독 김경형)도 나왔다. 일상 속에서 "날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게 가장 복된 삶이다. 크리스마스의 절정은 당일이 아닌 이브다. 크리스마스는 기다릴 때 더 행복하다.
출처 :조선일보,201612.22. 김기봉 교수(경기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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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영국에서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파. 퓨리턴.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Ⅰ, 1558-1603년)가 1559년 통일령(統一令)과 수장령(首長令)을 통해 확립한 영국 국교회에 반대하여 국교회의 가톨릭 제도를 배척하고 칼빈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① 교회의 해석이나 전승보다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② 예배에서 가톨릭의 미신적 요소를 배격하며, ③ 특권 계급을 암시하는 사제들의 제복 폐지, 성만찬의 비성경적 의식을 반대하였다. 이렇게 교회의 개혁과 정화를 요청했다 하여 이들은 '퓨리턴'(Puritan)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개혁 안은 영국 교회의 입법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켄터베리 교직회의에서 부결되었고, 수용을 거부하던 청교도 목사들은 면직되고 투옥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엘리자베스 1세의 긴 치세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그 후 제임스 1세(James Ⅰ, 1603-1625년 재위)가 즉위하자 청교도는 천 명의 서명을 받아 교회 개혁을 청원했다. 이를 '천 명 청원서'(Millenary Petition)이라 한다. 그러나 이 청원은 1604년 '햄프턴 어전회의'(Hampton Court)에서 성경 번역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부되었다. 이렇게 하여 번역된 성경이 유명한 흠정역(欽定譯, Authorized Version, 1611년)이다. 그 결과 청교도에게는 영국 국교를 신봉하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박해가 따랐다.
청교도는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와 주변 국가로 피난했다. 이들 가운데 1620년 9월 6일 영국의 플리머드(Plymouth) 항에서 메이플라워 호(Mayflower)를 타고 신대륙을 찾아나선 102명의 청교도는 유명하다.
이들은 12월 21일 미국 동북쪽 매사추세츠의 플리머드(Plymouth Colony, 고향을 생각하며 같은 이름을 지어 불렀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을 넘기면서 절반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신대륙에서 죽었다. 이후 1640년까지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는 무려 2만여 명에 달했다.
한편, 1640년 스코틀랜드 장로파의 반발로 찰스 1세(Charles Ⅰ, 1625-49년)는 반란 진압에 필요한 전비(戰費) 마련을 위해 의회를 소집하는 데 실패하자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에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8년간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것이 청교도 혁명이다.
이 전쟁에서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년)이 이끄는 의회파가 승리하여 찰스 1세가 사형됨으로써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크롬웰 사후 다시 왕정이 복고되고 가톨릭 성향을 가진 찰스 2세(Charles Ⅱ, 1660-1685년)와 그의 동생 제임스 2세(James Ⅱ, 1685-1688년)가 즉위하면서 청교도는 다시 혹독한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교도 [淸敎徒, Puritan] (교회용어사전 : 교파 및 역사, 2013. 9. 16.,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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