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서희(23)가 군무(群舞)에서 빠져나와 로미오와 파드되(2인무)를 춘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활약 중인 서희가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맡는다. 3월 14일 디트로이트, 7월 9일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그녀의 도약을 볼 수 있다.
ABT는 영국 로열발레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등과 함께 세계 정상의 발레단. 2004년 입단해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군무진) 등급에 있는 서희가 전막(全幕) 발레의 주역을 맡기는 처음이다. 그녀의 '줄리엣 스토리'가 더 드라마틱한 까닭이다.
"신분 상승이요? (웃으며) 전에 이 작품 할 때는 줄리엣 친구로 나왔어요.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줄리엣으로 춤춘다는 게) 진짜 같지가 않아요. 공연을 해야 실감날 것 같아요."
국제전화에서 서희는 뜻밖에 담담했다. 그녀는 "1월 중순 예술감독 케빈 맥킨지가 지나가면서 툭 던지듯 '줄리엣 리허설(연습)을 준비하라'고 해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네' 하고 받았다"며 "당장 눈앞에 닥친 《백조의 호수》 《지젤》을 준비하느라 줄리엣 연습은 하루 두세 시간밖에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케네스 맥밀란이 안무한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해적》과 함께 ABT에서 DVD까지 낼 만큼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레퍼토리다.
"막상 줄리엣을 해보니 얼마나 좋은지는 아직 모르겠고 어렵기만 해요. 줄리엣이 몸에 익으면 다른 감정이 솟겠죠? 안무는 참 훌륭해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마주 보는 장면도 있어요. 붙어서 춤추는 것보다 사랑이 더 깊어 보여요."
ABT에는 니나 아나니아시빌리, 팔로마 헤레라, 질리언 머피, 시오마라 레이즈 등 세계적인 발레리나들이 즐비하다. 군무를 추던 무용수가 그녀들과 함께 줄리엣을 나눠 맡는 것은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서희는 무용잡지 《포인트(Point)》 지난해 1월호에 '2007년 가장 인상적이었던 무용수'로 소개됐고, 또 다른 월간지 《타임아웃(Time Out)》이 '2008년 주목해야 할 발레리나'로 그녀를 지목하는 등 '신분 수직 상승'이 예고돼 있었다.
서희는 2003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거쳐 ABT에 둥지를 틀었다. 러시아 발레가 '포 드 브라(팔 움직임)'·시선·손끝 같은 상체를 중시한다면 독일은 하체 움직임을 강조하는데, ABT는 완전히 달랐다. 섬세한 표정 연기와 부드러운 춤으로 호평받는 서희는 "찍어내고 복제한 것 같은 춤으로는 ABT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몸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개성적이냐가 포인트"라고 말했다.
ABT 단원 80여명 중 50여명이 코르 드 발레다. 'ABT 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 그들에게 콩쿠르 입상은 흔한 경력이다. 솔리스트로의 승급 가능성을 묻자 서희는 "여기서는 노력하고 투쟁해야 얻어지는데 결과는 나와 봐야 안다"면서도 "뭔가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고 했다. ▣ (조선일보 문화 200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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