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깡통 소리도 악보에 담은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업실엔 피아노가 없다. 그는 음반과 책, 악보들로 가득 찬 방의 책상에서 오선지에 곡을 쓴다. 음표 몇 개를 그려 넣고 형형히 쳐다본다. 말 그대로 눈빛이 종이 뒷면을 뚫을 기세다. 그의 음악은 악기 속에 있지 않고 머릿속에 있었다. 머릿속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의 전두엽을 자극해 손을 조종했다. 그의 음악은 뇌를 가득 채우고 흘러넘쳤다. 퍼올리거나 짜내지 않았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피아노 앞에서 멜로디를 짜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완성된 교향악을 책상에서 악보로 옮겼다. 흡사 세공 장인의 작업실 같은 모습이다. /영화사 진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7월 5일 개봉)’는 20세기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미션’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등의 아름다운 메인 테마곡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모리코네를 뛰어난 멜로디 작곡가로 기억하겠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모리코네는 주세페 베르디가 존 케이지를 만난 경우였다고.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20년 92세로 숨지기 얼마 전 정정했던 모리코네와의 인터뷰를 뼈대로 한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모리코네는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 트럼펫을 배웠다. 아버지는 중고 트럼펫을 사주면서 “이걸로 가족을 부양하라”고 했다. 모리코네는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하는 건 끔찍하게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귀에 쏙 박히는 멜로디를 써내는 건 그에게 작곡이 아니었다. 모리코네는 존 케이지의 기괴한 공연을 보고 정반대의 길로 갔다. 그가 1964년부터 활동했던 전위음악 그룹 ‘일 그루포(Il Gruppo)’는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괴이쩍은 소리를 합주하는 팀이었다(존 케이지의 명언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다’를 실천했다).
그는 서부영화에 휘파람(황야의 무법자)을 처음 넣었고 코요테 울음소리에서 ‘석양의 무법자’ 테마곡을 떠올렸다. 빈 깡통과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도 악보로 그렸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만든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이 할리우드에 충격을 줄 때 모리코네의 음악이 흘렀다. 그는 20세기 이탈리아 영화가 왜 강한지 설명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영화들의 명장면이 모리코네 음악과 함께 쉴 새 없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모리코네의 멜로디에는 끌과 망치, 쇳물과 불꽃 같은 대장장이의 기운이 있다. 남들이 간 길과 내가 한 번 갔던 길은 절대로 다시 가지 않겠다는 고집불통이 서려 있다. 완성된 용 그림에 눈알 그려 넣는 데만 석달씩 걸린 듯한 음악이다. 그것이 평생 숲과 강만 쳐다보며 멜로디 만든다는 B급 발라드 작곡가들과 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칸초네 편곡으로 밥벌이하던 젊은 시절부터 베토벤과 바흐를 차용했던 모리코네는 오랫동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통 클래식계에서는 그를 ‘딴따라’ 취급했고 미국 아카데미는 다섯 번 연속 그를 후보에 올렸다가 물먹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리코네의 음악이 200년 뒤 또 다른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영화에서 말했다. “엔니오의 음악은 또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정확하다. 때론 모리코네 음악에 영화를 입힌 것 같았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3.06.27. 03:00 [조선일보,202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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