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알파고(AlphaGo)의 등장은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생각을 주었다. 놀라움과 충격으로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혹은 어떤 일자리가 살아남을지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알파고의 소비 전력은 170㎾(킬로와트)이지만, 이세돌은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성인의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0.02㎾라고 알려져 있으므로, 알파고가 바둑을 두려면 무려 8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처럼 에너지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미래를 전망하는 중요한 관점이다.
인류가 만든 어떠한 컴퓨터도 아직 인간의 뇌처럼 적은 에너지로 작동하지 못한다. 1.5㎏에 불과한 인간 두뇌는 사물의 인식과 논리적인 사고와 판단, 그리고 예술 창작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복잡한 연산을 전구 하나를 겨우 켤 수 있는 에너지로 수행한다. 이에 반해 알파고 이후의 인공지능은 오히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쪽으로 발달하고 있다. 지난 8월 테슬라가 발표한 자율주행용 인공지능의 경우, 학습을 위한 서버 한 대가 사용하는 전력은 무려 1800㎾로, 알파고의 10배가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다양한 분야로 쉽게 확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1년 퀴즈 프로그램 우승으로 유명해진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그 이후 용도를 찾기 힘들어졌고, 알파고 역시 바둑 외에는 아직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학습된 인공지능이 다른 분야에서 효과를 내기에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딥러닝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응용 사례마다 다시 학습해야 한다면, 에너지 위기의 현실에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지난 4월 발표에 따르면 전기차는 아직 세계 전력 수요의 1%이지만 2030년에는 10%나 될 것이고, 이미 데이터 센터의 사용 전력으로도 심각한 온실효과가 우려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소비 전력의 심각성은 인간의 육체 노동을 대신한다는 로봇 기술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흔히 전력 사용량을 말할 때 kWh(킬로와트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1kWh는 1㎾의 전력을 1시간(h) 동안 사용한 에너지를 뜻한다. 인간이 하루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대략 2.5kWh 정도인데, 이 중 20% 정도를 뇌와 각종 신경계가 소비한다. 인간의 두뇌가 사용하는 에너지 비율이 꽤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인간의 육체가 두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7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데이비드 라이클렌(Raichlen) 교수팀은 미국 국립과학회보(PNAS)에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은 1㎞를 걸을 때 약 0.06kWh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비해, 4족 보행을 하는 침팬지의 경우는 무려 4배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에너지 소모를 4분의 1로 줄였다. 즉, 인류 문명은 인간 육체의 에너지 혁명이 가져다준 것이다. 인류는 기어 다니는 생활을 포기한 대신 두 발로 걷는 2족 보행으로 효율을 극대화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두뇌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동작을 모방해 만든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은 어떨까? 현재 2족 보행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의 무게는 80㎏ 정도. 탑재된 배터리에 담긴 에너지는 3.7kWh이고, 한 시간 정도 작동할 수 있다. 이 에너지로 5.4㎞를 이동하는 아틀라스는 1㎞에 0.7kWh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로봇은 두 발로 걷는 데만 인간의 10배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한다. 장애물을 뛰어넘는 복잡한 동작이 아니라 단순한 걸음걸이조차 인간을 따라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리튬 배터리는 ㎏당 겨우 0.15kWh 정도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3.7kWh의 에너지를 위해 무려 25㎏ 무게의 배터리를 싣고 이동해야 한다. 더구나 한 시간 만에 소진된 배터리를 다시 채우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인간은 빵 한 조각으로 10㎞ 이상을 이동할 수 있고, 잠시 쉬면서 다시 빵 한 조각을 먹으면 10㎞를 또 갈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이 에너지를 저장하는 지방은 1㎏에 무려 10.5kWh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리튬 배터리 70㎏에 해당하는 양이다.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2배의 성능을 내더라도 이 차이는 쉽게 좁혀지기 힘들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생각하는 능력도 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에너지 효율이다. 오랜 지구 역사에서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효과적인 에너지 소비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며 이제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오히려 에너지를 더 소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특히 자율주행과 같은 미래 모빌리티(mobility), 즉 운송과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에너지 혁신일 것이다. 어떻게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할지에 대한 답 역시 인간에게 있다.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인간의 동작을 연구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이를 통해 인류가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민태기의 사이언스 스토리, 에스 앤 에이치 연구소장 / 조선일보,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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