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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문.사.철.공학,컴퓨터)

당 해서의 확립, 그리고 구성궁예천명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은 인상주의 미술입니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나 모네의 풍경화들, 그리고 르노와르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언제 보아도 정감이 넘치는 좋은 인상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상주의 미술은 자연광 아래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상들을 빠른 스케치와 스넵적인 시각으로 포착해서 자연스런 분위기를 표현해 낸 미술의 한 조류였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이 탄생하기 전 만 하드라도 그림이란 부유층이나 특권층의 전용물이었으며, 초상화 한 폭을 그리기 위해서는 화가 앞에서 몇시간씩을 꼼짝도 하지 않은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 하는 고통스런 인내를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의 흥행으로 르네상스 이후를 장식해 왔던 바로크, 로코코, 고딕미술이 빛을 잃게 되었고 미술은 그야말로 다양한 대상과 변화무쌍한 찬란한 색체들로 장식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 불변의 원칙은 없듯이 인상주의 미술의 성행에도 무언가 아쉬움이 내재하고 있었고, 현란한 색체의 화려한 이면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미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이 순간순간의 찰나적인 모습을 그 때마다의 독특한 색체로 표현해 낸 것은 대단한 성공과 발전을 가져 온 것임에 틀림없었으나 자연의 본래 모습인 굳건한 형태미는 뒷전으로 밀려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미술가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후기인상주의의 세 화가. 고흐, 고갱, 세잔이 죽고나서야 세잔의 회고전에서 감명받았던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실험정신이 강했던 젊은 화가들이 세잔이 추구했던 단순미와 더불어 굳건한 형태미를 복원해 내고자 한 노력에 의해서 입체파를 위시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조류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인상주의 그림>

 

 

<입체파의 그림>

 

한자의 발생과 형성을 살펴보면서 당나라 시대에 해서체(楷書體)가 확립되는 과정이 서양미술에서 우리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인상주의의 뒤에 일어나는 입체파나 야수파의 탄생 배경과 이해를 같이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희지가 살았던 동진시대와 오호 십육국에서 남북조로 이어진 기나긴 혼란의 시기, 잠깐 동안의 수나라의 통일에 뒤이어 당이 중국 천하를 물려받고서야 비로소 정관의 치세라는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 번영의시대가 도래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정신이 한가하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질 것입니다.

서예 또한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는 속기를 가능하게 하는 행서나 초서의 발달이 뒤따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다가 사회가 안정되고 물자가 풍요로와지는 시대에 이르러서는 의미도 잘 모르게 무질서하게 휘갈겨지는 행초에서 무언가 질서와 규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서예에서도 엄정한 법도를 세워 나가야 할 당위성이 당 해서를 꽃피우게 되지나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것은 마치 서양미술에서 인상주의의 현란한 색체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골격과 단순한 형태미가 강조되는 입체파, 야수파라는 조류가 뒤를 잇듯이,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행서나 초서의 유려한 서체에서 한 글자, 한 획 마다 확실한 규칙과 법도를 확립한 해서체가 애매모호한 행초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행하게 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초서 천자문>

 

 

<해서 천자문>

 

 

이러한 이유로 해서의 발생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초기 단계를 살펴보면서 당나라 시대 해서의 확립과 명필들의 필적을 더듬어 보는 것이 서예의 변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왕희지의 출현은 동진시대 <307~365>년간이었으며, 이 시기에도 해서는 존재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만 본격적인 해서체의 출현은 <서기 405년에 건립된 찬보자비>에서 해서의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이 찬보자비의 글씨를 예서체로 볼 것이냐 해서체로 볼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정도로 해서는 예서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에 용문석굴에 새겨지는 우궐조상기<459년>를 비롯한 용문20품의 글씨들이 해서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서체 발전의 중기라고 할 수 있는 글씨체는 정문공비<511년>나 장맹룡비<522년>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 과정을 거쳐 당나라로 넘어오면서 구성궁 예천명<632년>을 쓴 구양순이 출현합니다.

 

<찬보자비 탁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용문 20품 탁본>

 

 

<장맹룡비 제액>

 

 

 

 

<入道於諧有三 九成.化度.廟堂三碑耳 / 입도어해유삼 구성. 화도. 묘당 삼비이>

해서로 들어가는 길은 세가지가 있으니, 구성궁 예천명과 화도사비, 그리고 공자묘당비의 세 비문이다.

 

이 말은 추사 김정희 선생께서 서예를 시작하는 분들이 서예의 기초공부를 해서로 부터 시작하라고 권유하면서 그 중에서도 구성궁 예천명이 해서의 대표가 될 만 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해서의 법첩만 하드라도 그 종류가 수없이 많습니다.

해서라 해도 서예가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자기에게 맞는 해서체를 골라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초학자들에게는 그다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구성궁 예천명>

 

 

<안근례비>

 

 

<유공권의 해서>

 

 

 

 

<조맹부 해서>

 

 

 

 

이렇게 시대를 따라 해서체가 변천해 왔기 때문에 그 원류에 해당하는 구성궁 예천명으로 해서의 기본을 다지고 난 후에 다른 서체를 공부하는 것이 서예학습의 바른 길이 될 것이라는 대가의 사려 깊은 배려가 위의 말 속에 들어 있는 깊은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성궁 예천명 비문의 탁본>

 

구성궁 예천명 비문의 내용에 관해서는 아래의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성궁 예천명 ; http://blog.daum.net/imrdowon/8468168>

<해서체 楷書體 / 다음 백과사전>

후한시대(後漢時代 : 23~220)에 전대(前代)의 예서 (隸書)를 좀더 유연하고 쓰기 쉬운 형태로 단순화시켜 발전시킨 중국 서체.

해서

해서는 진서(眞書)·정서(正書)·금예(今隸)라고도 한다. 후한말에 한예(漢隸)의 파책(波磔)을 변화시키고 여기에 점(點)·탁(啄)·도(桃)·적(趯)을 더하여 만들어진 방정한 서체로, 당나라 때는 예서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해서라고 한다. 주로 공문서에 이용된 양식이며, 글자의 모서리가 깔끔하고 다양한 두께의 곧은 획이 특징이다. 당대(唐代 : 618~907)에 최대의 전성기를 맞아 가장 중요한 서체가 되었다. 그당시 문관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서예의 숙련도와 관련이 있었다. 해서는 현재 사용하는 표준서체와 인쇄체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현전하는 가장 초기의 예는 위(魏)나라 종요(鍾繇)가 쓴 법첩인데 성숙된 경지를 보이고 있어 그 이전에 이미 해서체가 발전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에 이르러 일단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해서는 북위해(北魏楷 : 일명 魏體)와 당해(唐楷)로 분류된다. 북위해는 북조(北朝)시대의 해서체로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서체이며, 아직 예서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방필(方筆) 위주의 방정하고 묵직한 필법을 보여준다. 이것은 북위시대의 비(碑)·석각(石刻)·마애(磨崖)·조상(造像) 등에 새겨진 문자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당대는 해서의 성숙기로 글자체가 정련되어 표준의 서체가 완성되었으며 해서를 장기로 하는 전문서예가들이 배출되었다. 대표적인 서예가로는 구양순(歐陽詢)·우세남(虞世南)·저수량(褚遂良)·안진경(安眞卿)·유공권(柳公權)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김정희의 〈묵소거사자찬〉,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 발문, 이이의 서간문 등이 대표적인 해서체로 꼽힌다.→ 서예

<당 해서의 확립>을 언급하면서 저의 기획물인 <한자의 발생과 형성>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동안 이 글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한자(漢字)의 발생(發生)과 형성전(形成展) 기획

1. 원시의 골짜기 甲骨文의 세계

1-1. 은 무정왕 갑골문

1-2. 은 부호왕비 갑골문

1-3. 은 말기의 갑골문

1-4. 갑골문 작품

2. 그림에서 태동하기 시작하는 殷 金文

2-1. 양마천시부정

2-2. 자복자요자룡

2-3. 거부신거어거집어

2-4. 제기차정부계

2-5. 소신존 금문

2-6. 소자 금문

2-7. 중자 금문

2-8. 극정 금문

3. 청동기에 새겨진, 철밥통 만큼 둔탁한 周金文

3-1. 周 무왕 대풍돈

3-2. 周 성왕 대보돈

3-3. 백자부돈

3-4. 세유 금문

3-5. 주공돈

3-6. 사송돈

3-7. 대돈

3-8. 국차첨

3-9. 대우정

3-10. 모공정

4. 大篆에서 小篆으로 가는 길목에 돌로 북을 만들어 石鼓文을 새기다.

석고문

5. 어지러운 세상 만큼이나 다양한 춘추전국시대 문자들

古文 金剛經

6, 소전으로 문자 통일

秦 驛山刻石 탁본

8. 隸書의 꽃을 피우는 한나라 석비들

8-1. 석문송 탁본

8-2. 을영비 탁본

8-3. 예기비 탁본

8-4. 조전비 탁본

8-5. 장천비 탁본

9. 위대한 書聖 王羲之의 출현과 行書, 草書

9-1. 행서- 난정서 탁본

9-2. 초서- 17첩 탁본

9-3. 초결가 탁본

10. 唐 諧書의 확립

10-1. 구성궁 예천명 탁본

10-2. 안탑성교서 탁본

10-3. 안근례비 탁본

 

[출처; 블로그 '무릉도원' 도원장, 2012.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