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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문.사.철.공학,컴퓨터)

13월

입력 : 2014.12.30 03:04
노석조 국제부 기자
노석조 국제부 기자
12월과 1월 사이에 '13월'이 있는 달력을 본 적이 있다. 재작년 12월 말 인류의 젖줄인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발원지가 있는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국가기록원은 고대(古代) 달력을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바하르 하삽'이라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달력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따르는 그레고리안력(曆)과 달리 1년이 13개월로 나뉘어 있었다. 1년을 약 365.25일로 계산한 건 같은데, 1월부터 12월까지는 한 달을 30일씩 채워놓고 남은 5일은 13월을 만들어 집어넣었다. 이렇게 했을 때 매년 약 0.25일씩 남는 시간은 모아서 4년에 한 번씩 13월에 하루를 더 넣어 그달을 6일로 만들었다.

바하르 하삽을 연구·관리하는 국가기록원 직원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성직자였다. 깡마른 체구에 허름한 도포를 두른 그는 달력을 경전(經典) 다루듯 했다. 그는 "바하르 하삽은 에티오피아 고대 언어로 '바다를 계산하다'라는 뜻"이라면서 불쑥 "바다를 계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라고 기자와 유네스코 위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들 "비가 오면 바다의 물 양이 왔다 갔다 할 텐데 어떻게 계산을 하느냐" "바다의 뭘 계산한다는 것이냐"면서 의아해했다. 잠시 뒤 그 성직자는 "바다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면서 "바다는 그 누구도 계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력을 바하르 하삽이라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간이 인간의 능력 밖에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달력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도구이면서 한편으론 그렇게 하지 못함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연말인 요즘 여기저기서 "벌써 1년이 다 지나갔어" "한 게 없는데 어쩌지"라는 소리가 들릴 때면 더 그런 듯하다. 달력 칸칸마다 메모를 하고 계획을 짜 넣었는데도 뭔가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이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도는 데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린다는 걸 인류가 계산해놓고도 정작 오차 없는 달력 하나 만들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내는 걸 보면 '연말의 한숨'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인 듯하다. 현재 우리의 달력은 윤년(閏年)이라는 일종의 편법을 쓰는데도 실제 천체의 주기와는 3300년마다 1일의 차이를 내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지금 바하르 하삽이 아닌 그레고리안력을 사용하고 있다. 1년을 13개월로 만들어 넣은 것이 비과학적이고 다른 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불편을 낳아서라고 한다. 유네스코도 바하르 하삽을 세계 유형문화재로 등재할 것을 고려했지만 그 가치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하지만 바하르 하삽의 의미를 새기며 '13월'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해(年)와 해 사이의 징검다리가 돼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듯하다. 2015년 1월이 오기 전 하루 또는 반나절이라도 떼어내 자신만의 '13월'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