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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8세에 요절한 투탄카멘의 사망원인과 저주

   이집트 소년왕은 왜 18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했을까? 투탕카멘 무덤 발굴에 관계된 사람들은 왜 줄줄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을까? 조선일보가 경기도 과천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전(展)에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가득하다. 전시장에선 방학을 맞아 몰려든 어린 관람객들이 둘러보며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여기 다 있다"고 열광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투탕카멘 사망 원인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번 특별전에서 특히 관심 끄는 대목은 투탕카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18세에 급사한 그의 사망원인을 놓고 발굴 당시부터 이견이 분분했다.
   발굴 당시의 학자들은 어린 왕이 둔기에 맞아 암살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1968년과 1978년 투탕카멘의 미라를 대상으로 두 차례 실시한 엑스선 검사결과 두개골의 상처에서 강한 타격으로 생긴 듯한 부서진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소년왕이 암살됐다는 음모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혼란기였던 BC 14세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말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 이밖에도 사냥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사고사', 지병, 폐결핵 같은 전염병, 허약 체질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2005년 실시된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사인(死因)은 무릎 골절에 의한 합병증으로 판명됐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된 줄 알았던 부러진 다리는 사망 전 부러졌고 투탕카멘은 생존시 지팡이를 짚었으며 동시에 여러 질병에도 감염됐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0년 DNA 분석에서는 비정상적 뼈에서 기인한 질병과 말라리아의 복합 원인 때문이었다는 것이 추가로 밝혀졌다. 당시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투탕카멘은 골절로 인한 골괴사증(骨壞死症)과 말라리아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발표했다.
   ◇투탕카멘의 저주?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 무덤을 봉인된 상태로 발견했다. 피라미드엔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들의 머리 위에 화염을 토해 육신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저주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실제로 투탕카멘 발굴 후 왕릉 발굴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투탕카멘의 저주일까?
   카터의 무덤 발굴을 후원한 영국 귀족 카나번경(卿)은 발굴 6주 만에 투탕카멘의 얼굴 상처 부위와 같은 곳을 모기에 물려 사망했고, 카터의 조수였던 아서 메이스는 카나번 사망 직후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했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조사하기 위해 이집트에 왔던 X선 촬영기사, 미국 철도계의 거물 조지 J 굴드도 무덤을 본 후 폐렴으로 죽었다. 발굴 대원의 상당수도 원인 모를 병으로 죽거나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탕카멘의 저주'는 사람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후 발굴단의 사인(死因)에 대해 과학적인 주장들이 제기됐다. 1200년 동안 벽에 기생하던 곰팡이나 박테리아가 사람의 폐에 전염됐거나 무덤 안의 강력한 독이 피부에 묻어 죽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에서 인체에 유해한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영국의 한 역사학자가 "사망자 중 최소 6명은 저주가 아니라 알레이스터 크롤리라는 악마주의자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는 등 '투탕카멘 저주'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정작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 카터는 65세에 자연사해 저주는 미신일 뿐임을 '증명'했다.
   ▶2월 26일까지 경기도 과천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실, (02)3677-1435  ▣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