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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기타종교

[스크랩]이슬람교의 시아(shia)파와 수니(sunni)파

   이슬람권은 다수인 수니파(80~ 90%)와 시아파로 나뉜다. 632년 이슬람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후손 없이 세상을 뜨면서 생긴 승계 시비가 분열의 발단이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는 약 10만명의 추종자들이 신생 이슬람국을 이루고 있었다. 리더십 공백을 놓고 마호메트의 혈족 중에서 칼리프(정치 지도자)를 추대해야 한다는 시아파와 혈통과 무관하게 통치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수니파가 맞섰다. 다수는 마호메트의 측근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로 선출했다. 반면 소수 그룹은 혈통 승계를 고집하며 마호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수니(Sunni)'란 말도 '마호메트의 언행을 따르는 이들'이란 뜻인 반면 '시아(Shia)'는 '알리의 추종자들'이란 말의 축약어다. 결국 알리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아부 바크르를 1대 칼리프로 인정했다가 3대 칼리프인 우스만이 암살된 후 4대 칼리프에 올랐다. 그러자 우스만의 6촌 동생이자 당시 시리아 다마스쿠스 총독 무아위야가 반발했다. 661년 알리가 살해된 후 무아위야는 왕조를 세워 자기 아들에게 칼리프를 물려준다.
   그 후에도 시아파는 '순교자' 알리의 말을 높게 받드는 등 수니파와 이슬람 해석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엄격한 성직자 위계가 존재하고 이들이 막강한 정치적 권위를 행사한다는 점도 시아파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양 분파 간 갈등은 교리문제라기보다 중동의 지정학적 변동과 관련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수니파의 '수호자'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은 친미(親美)로 안정을 추구해온 반면 시아파 대국인 이란은 반미(反美)를 내세워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인접한 또 다른 중동 대국 이라크는 세속주의 후세인 정권 때는 소수계인 수니파가 득세했지만 이라크전 이후 시아파가 선거로 다시 집권했다. 시아파 이란으로서는 지역 환경이 더욱 유리해지는 형국이다.
   이번에 사우디의 바레인 파병도 중동의 얽힌 수니·시아 관계와 역학 판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바레인에서는 소수인 수니파 왕정이 국민 다수인 시아파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자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 왕정에 도움을 청한 것. 국내 시위 파급을 우려한 사우디 왕정이 파병하자 시아파인 이란이 견제 발언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 [조선일보 2011.3.16.수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