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0.7.7. 문화면 김성현 기자의 `클래식 ABC'를 스크랩>
오페라(opera)는 라틴어로 '작품(opus)'이라는 명사의 복수형입니다. 어떻게 해서 '작품들'이 '오페라'라는 고유명사로 변한 걸까요.
"이렇게 이틀 밤을 지내노니, 허물도 적을뿐더러, 이제는 춘향모(母)도 아는지라, 하루는 도련님이 술도 한잔 얼근하여, 마음 놓고 사랑가를 부르며 놀던 것이었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은 이도령과 춘향의 애틋한 첫날밤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리꾼은 먼저 '아니리'로 둘의 상황을 설명한 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 어 둥둥. 내 사랑이지야"라고 운을 떼면서 구성진 창(唱)으로 넘어갑니다. 진양조에서 중중모리로 가속을 낼수록 둘의 애정도 점점 농염해집니다.
판소리와 뮤지컬, 오페라까지 음악극(音樂劇)들은 이처럼 드라마 전개를 일러주는 사설과 등장인물의 서정적인 감흥을 드러내는 노래로 구분돼 있습니다. 판소리가 아니리와 창으로 나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페라 역시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아리아(aria)로 갈라지지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바람둥이 돈 조반니가 시골 처녀 체를리나에게 "나는 명예로운 신사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소"라며 한참이나 수작을 건 뒤에야 둘은 이중창 '서로 손을 잡고'를 부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극의 상황을 일러준 뒤 아리아를 부르고,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고 중창(重唱)을 부르는 방식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구분한 작품들을 '번호 오페라(number opera)'라고 부릅니다. 실제 악보에도 몇 번 곡인지 번호를 붙여놓고 있지요. 오페라를 '작품들'이라는 복수형으로 부르는 것도 노래 한 곡을 개별 작품으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전체 3~4악장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박수를 참으면서도 오페라는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환호를 보내는 것도 이러한 관례와 연관 있겠지요.
바로크 시대부터 모차르트와 베토벤, 로시니와 도니체티까지 일종의 공식으로 자리잡았던 '번호 오페라'의 관행은 독일 작곡가 바그너에 의해 도전받습니다. 음악과 음악과 문학·무용·연극까지 종합무대예술을 꿈꿨던 바그너는 극적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일절 중단 없이 음악을 이어갔습니다. 바그너의 작품은 음악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멈춤 없이 무한 지속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때문에 바그너의 작품은 오페라 대신 '악극'(樂劇·music drama)으로 부르기도 하지요.
이탈리아 오페라 역시 베르디의 후기작과 푸치니에 이르면 해설과 노래의 구분은 약화되거나 사실상 사라집니다. 이렇게 때가 지나면 유행이 관습과 굴레가 되는 건 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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