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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경제,사회,문화)

가황 나훈아; "나는 흘러가는 노래를 부르는 유행가 가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는 이유로 15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가황’(歌皇) 나훈아(73)의 선택은 옳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맞은 올해 추석의 키워드 중 하나는 ‘나훈아’였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나훈아쇼)은 전국 시청률 29%를 기록했고, 그 후일담을 담은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의 시청률 또한 18.7%로 치솟았다. 공연은 전 세대를 사로 잡았고, 그의 소신있는 발언은 국민적 공감을 얻으며 ‘어록’으로 묶여 회자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정쟁의 도구로 삼기도 했다.

나훈아가 공연 도중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이 현 정권을 비판했다는 야권의 해석이 나왔다. 또한 KBS에서 공연하는 그가 “KBS가 눈치 안보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는 일침 역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나훈아는 이런 신드롬에 대해 더 이상 말이 없다. 그의 뜻은 명확해 보인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것. 나훈아와 머리를 맞대고 ‘나훈아쇼’를 만든 이훈희(사진) KBS 제작2본부장은 방송 후 나훈아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나훈아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방송 나간 이후 일절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무대 위에서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줬으니 더 말할 게 없는 것이다. 무대 위 나훈아의 모습이 ‘베스트’였다”고 말했다.

나훈아는 이번 공연에 참여하며 ‘노 개런티’를 선언했다. 조심스럽게 출연료 이야기를 꺼내자 나훈아는 “내는 출연료 달라 소리 안 한다. 돈 받으면 너거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잖아”라며 “좋은 쇼 만드는 데 돈 마이 씁시다. 출연료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 퀄리티 위해 쓸 거 씁시다. 내는 안 받으면 더 잘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이 본부장은 전했다.

나훈아는 지난달 23일 온라인 관객 1000명과 비대면 공연을 진행했고, 이 실황이 30일 전파를 탔다. 그는 공연을 마친 후 TV로 내보낼 편집 과정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 속 한 마디 한 마디에 그의 속내가 담겨 허투루 흘릴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이 본부장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에 대해 답을 내릴 사람은 아니다”며 “나훈아의 깊은 속내를 모르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얽매이길 원치 않고 자유롭고자 하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 만의 외출’ 마무리 부분에서 나훈아가 이 본부장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당초 계획에 없었다. TV 편집을 마친 후 나훈아가 “둘이 시작했으니 둘이 끝내자”며 갑작스럽게 제안해 마련된 자리다. 그는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냐”는 이 본부장의 물음에 “우린 유행가 가수”라며 “흘러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데 뭐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좀 웃기는 얘기”라고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이번 공연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의 관심은 “나훈아를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흘러가는 사람이고 싶다’ 하기에 다음을 기약하는 말조차 나누지 못했다”며 “그조차 자신을 얽매는 것으로 생각하는 예인(藝人)”이라고 답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20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