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서울주보 3
오래
잊은 지 오래
나, 품앗이 잊은 지 오래
언제부터였을까
저마다 농약 통을 등에 지고
독한 풀약뿌리면서부터였을까
트랙터 사들이고부터였을까
앞다퉈 논밭 깔아뭉개고
대형 비닐하우스 짓고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좌변기에 앉아 똥오줌 누면서부터
구들장 뜯어내고 기름 때면서부터
길 뚫리고 땅값오르면서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걸쭉한 농담 주고받으며
더운 땀 식혀가며 밭 그늘에 둘러앉아
술잔주고받은 지
친구들과 들 밥 먹어본 지
아랫집 현수얼굴 본 지도 오래
정말 오래
낫도 괭이도 지겟작대기도
나, 잊은 지 오래
16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동네를 통틀어 두 대의 트랙터가 있었다. 지금은 14대의 트랙터가 왕왕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계산상으로는 7배는 더 여유롭게 더 잘 살아야 함에도 도리어 각자 어깨에 집채만 한 트랙터무게만큼 생활의 부채를 짊어지고 힘겨워들 한다. 그동안 마을 공동우물은 농로 확장포장에 메워지고 개울가 빨래터는 하천제방공사에 흔적 없이 묻히고 사라졌다.
20년 전보다도 배춧값은 영 형편없는데 그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김치냉장고 때문이라고 곱지 않은 눈을 뜨고 구시렁거리면서도 빠짐없이 집 안에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고 사는 것이 요즘 시골 풍경이기도 하다. 살포기라는 것, 트랙터나 1톤 화물차에 달아 쓰는 살포기가 나오기 전에는 일일이 사람 손으로 거름을 밭에 내다 폈다. 차도 닿지 못하는, 맨몸으로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든 가파른 비탈밭에 장정 대여섯 명이 퇴비 포대를 져 날라 온종일 뿌리고 나면 소주 댓 병 1~2상자는 쉽게 동나고 오늘은 김 씨네 내일은 박 씨네 봄 철 한 달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기 일쑤였다. 흠뻑 젖은 옷에 얼룩덜룩한 얼굴하고 산그늘에 앉아 먹던 들 밥은 왜 그리 맛있던지, 그 힘들고 고된 일에도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왜 그리 신이 났던지. 모름지기 농사라는 것이 하루하루 날씨를 빠짐없이 챙겨야 하는 하늘과의 동업이고 제아무리 성능 좋은 농기계에 의지한다 해도 결국은 사람 손을 덧대고 보탤 수 밖에 없기에 자연 사람 귀한 줄, 이웃이 소중하다는 것을 늘 깨닫고 산다. 이런 까닭에 한동안 보지 않을 것처럼 으르렁대다가도 머리 주억거리며 우리 밭일 좀 해달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길을 가며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남이 내딛는 발걸음을 조심조심 살펴보는 것이다. 여럿이 생각을 모으고 힘을 합치면 학교에서 배운 1+1=2만이 아니라 3, 4도 되고 때론 7, 8도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하찮은 벌레조차 함부로 지나치지 않고 손으로 쓰다듬고 끊임없이 눈길을 던지는 것이다.
비록 가진 것 없고 부족함이 많은 내 못난 존재일지라도 그 속에서만큼은 기쁨이고 행복일 테니까….
멀리서 가까이 보기 3
말씀의 이삭
“여러분은 어디에서나 평화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심의 성전에 하느님과의 평화를 간직하고, 가정과 일터와 여러분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전해야 합니다." - 복자 요한 23세 교황 -
머무름 김장일 도미니코┃농부
'시사(정치,경제,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족집게입시분석가25년; 김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 (0) | 2011.12.24 |
---|---|
[스크랩] 발레리나 김주원; 나의 백조는 호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0) | 2011.12.17 |
[스크랩]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지요 (0) | 2011.10.10 |
[스크랩] 스티븐잡스의 사망. 그리고 " 나(i) 별거 없는 인간이다. 그런데 나는 나다." (0) | 2011.10.07 |
[스크랩] "토사구팽... 30년 우정의 내마음, YS는 알텐데.." (0) | 201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