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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반성문

1. 교만했음을 반성합니다.

   지난 12.2일 발표곡<대관령>을 불렀을 때의 일입니다.

  혼자서 웅얼거리며 준비하던 것보다  piano의 전주가 생각보다 높은 key에서 나타나니 당황해서 부르긴 불렀는데, 끝날 때까지 어떻게 불렀는 지 모를 지경이었지요. 자리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참 못 부르는 구나. 대책이 없구나...

  그래서 노래를 계속 부르는 것은 작곡자에겐 모욕을 주고, 이웃에겐 소음이 되어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하였지요.

 

  지나간 일입니다.

  몇년전 <한국 애창 가곡집>이라는 책을 샀었는데, 목록을 펼쳐보니 책의 절반을 넘게 부를 수 있는 것 같았고, 그 들뜬 마음이

스스로를 클래식성악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방송이나 연주회때 몇몇 가수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소리에 비판적이었고, 심지어 나도 그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지요.

  지금보니 그건 오만의 극치였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소리를 만들려고 십수년간 생의 전부를 걸고 공부하며 몸을 다듬어 왔던 분들인데.....

  언뜻언뜻 흥얼거린 것이 전부이고, 그것도 실제 piano반주없이 대충 불러대기만 한것이 전부인 [나]라는 존재가 어찌 대놓고 전문가를 업신여겼다는 말입니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그 분들께 정말 존경한다고 말씀드리며, 그동안의 저의 교만을 깊이 반성합니다.

 

 2. 무지(無知)함을 반성합니다.

    노래를 부르다보니 성악에서는 'pitch'와 'beat'가 매우 중요한 기본요소였습니다.

    흔히들 절대음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확한 pitch에 소리를 꼿는 것은 오랜 시간 훈련을 해야만 가능한 영역이고,

    beat는 melody전개에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 두가지를 사람에 따라 타고난 행운을 누리는 분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듯하였기에 소위pitch痴(엉망)

 beat痴(진창)에 가까왔지요.

   성악의 기본이 되는 분야를 공부하지 않은 채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건 오만도, 교만도 아니고 오직 무지의 극치이지요.

  그것을 이제사 깨닫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고민입니까. 그래도 고백해야 합니다. 저의 무지를 반성합니다.

 

 3. 반성은 하였는데, 가슴은 자꾸 아파 옵니다.

   반성을 하고나니 속은 후련해지고, 나의 약점을 정확히 찾았기에 문제에 대한 답은 찾은 듯 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지금부터 제대로 하기가 쉬운 일입니까. 그것도 이 몸으로.....

 

  새해 달력을 앞에 놓고 노래없이 보내는 것을 가정해 봅니다.

  견디어 낼 수가 있을까요? 아니오, 절대불가(絶對不可)입니다. 어찌 좋아하면서도 멀리 떼어놓고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을까요. 그것은 실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삶의 의미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답답하여 이런 꾀도 생각해 봅니다.

  그래, 새해에는 나를 너무 구박만 하지 말자. 못한다고 자꾸 부정만 하지말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르면 배워 가면서, 속 편하게 앞으로 주욱 나가자, 뭐 이런 식으로 마음을 고쳐 먹으면 어떨까하고요.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는 든든한 선생님이 있고, 아무 곡이든 척척 반주해 주시는 어여쁜 반주자가 있고, 엉망진창으로 불러도 우레와 같은 박수로 성원해주는 따뜻한 마음의 이웃이 있는 가곡교실에서 그냥 묻어 가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착한 친구로 성장할 수는 없을까요.

 

  어제 저녁 성탄전야미사와 오늘 오전 성탄미사를 빠짐없이 연거푸 드렸지만 착찹한 마음때문에 그냥 안 즐겁게 보냈습니다.

  노래부르기가 교회생활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말입니다.(200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