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테스 형’
보기만 해도 짱, 보고 난 후엔 찡. 볼 때는 눈과 귀가 흐뭇한데 보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다. 볼 때는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보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더라. 프로듀서가 대충 바라는 희망사항 목록이다. 촬영을 시작하는 신호는 ‘액션(큐!)’이지만 정작 PD의 관심은 시청자의 리액션(반응)에 있다.
신곡 발표로 한 시간, 히트곡 메들리로 세 시간 이상 채울 수 있는 가수 나훈아가 이번엔 여러 방송사 중 KBS를 캐스팅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하지만 정성을 다해도 화제가 없으면 존재도 없는 게 이 바닥 생리다. 방송이 끝나는 순간까지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나훈아 ‘사내’ 중) 제작진은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기대는 엇나가지 않았다. 파장은 공연장을 넘어 광장으로 흔적을 남겼다. 정량평가는 29(시청률)를 기록했지만 정성평가는 숫자를 뛰어넘었다. 가황의 무대에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정하는 행위 자체가 부질없다는 걸 가수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수십 년간 그의 창법을 따라 해도 오리지널의 힘을 당할 순 없었다. 꺾기는 뒤집기를 넘어 굳히기로 접어들었다. 본의 아니게 의문의 1패를 당한 가수들이 댓글로 소환됐다.
이름 석 자로 공연 제목이 되는 가수 나훈아. 15년 만의 TV 나들이 부제는 ‘대한민국 어게인’이다.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총 30곡을 불렀다. 문득 궁금해진다. 노래를 세는 단위가 왜 곡(曲)일까. 한자 숙어에 우여곡절(迂餘曲折)이란 게 있다. 곡절 없는 인생 없기에, 또한 세상은 세월을 만나 구부러지기에 왜곡(歪曲)이란 단어에조차 곡(曲)이 스며든 거 아닐까.
유독 화제를 모은 곡이 ‘테스형’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사실 세상이 힘든 건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못난 사람)이 많아서라기보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못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아픔은 인생과 인심의 부조화,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물질로부터 구속이 없어야 영혼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게다. 본인은 출연료도 사양했다. 대신 어마어마한 큐시트를 내밀었다. 만약에라도 지급한다면 공연료에 강연료도 일부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때론 소박한 어투로, 때론 격한 어조로 54년 가수인생의 지론을 펼쳤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나훈아 ‘공’ 중). 인생에는 축제기간도 있고 수난기간도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달랐겠지만 요지는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거다. 설령 고향이 다르다고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날 여덟 번째로 부른 노래 ‘너와 나의 고향’에 그런 다짐이 담겼다.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중략) 미움이 변하여 사랑도 되겠지/ 마음을 달래며 알뜰히 살리라’.
노래만 계속 듣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연예인의 작심 토로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냥 노래나 불러.”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부르는 일이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나훈아 ‘자네’ 중). 이 말이 내겐 운명과 다투지 마라,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조언으로 읽혔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는 음악동네의 꺼지지 않는 휴화산이다. 참았다가 폭발해 산을 재구성한다. 철없던 시절엔 솔직히 유치하다 느낀 적도 있었는데 좀 살아보니 이런 말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좀 유치한 것, 그게 인생 아닌가.’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20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