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순의 '구성궁예천명' 본문 해석
<본문해석>
貞觀六年.孟夏之月.皇帝避暑乎九成之宮.此則隨之仁壽宮也.
冠山抗殿.絶壑爲池.고水架楹.分巖송闕.
정관 6년 초여름(孟夏之月)에 황제께서 구성궁으로 더위를 피하셨으니 이것은 곧 수나라의 인수궁이다.
산을 뒤로 하여 궁전을 세우니 깎은 듯한 골짜기가 못이 되었다. 물위에 기둥을 놓아 다리를 놓으니 바위를 나누어 대궐이 우뚝 솟아 있다.
高閣周建長廊四起.棟宇膠葛.臺사參差.仰視則초체百尋.
下臨則정嶸千인.珠璧交暎.金碧相暉照灼雲霞.蔽虧日月
높은 누각을 두루 세우고 긴 복도를 네군데 세워
용마루와 처마를 얽고 망루를 들쭉 날쭉 세우다.
고개를 들어 먼데 바라보니 모든 곳 살필만 하고
아래를 바라보니 가파른게 천길이라 구슬같은 벽이
서로 비추는구나 고운 색채 서로 빛나 구름과 노을
비추니 해와 달이 보이지 않는구나.
觀其移山廻澗.窮泰極侈.以人從欲.良足深尤.至於炎景流金.無鬱蒸之氣.微風徐動.有凄淸之凉.信安體之佳所.誠養神之
그 산을 옮기고 골짜기 물을 돌리는 것을 보면
泰를 다하고 侈가 극에 이르렀으니 사람이 욕심을
따르고자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족히 깊히 허물할
만 하지만 炎景流金일지라도 우울한 기운이 없고 미풍이 서서히 불어 처청(凄淸)의 서늘함이 있음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안체(安體)의 아름다운 바요 진실로 양신(養神)의 승지이니 더하지는 못하다.
勝地.漢之丹泉.不能尙也.皇帝爰在弱冠經營四方.
逮乎立年.撫臨億兆.始以武功壹海內.終以文德懷遠人.
東越靑丘.
황제가 약관에 있어서
사방을 경영하였고 입년(30세)에 미쳐서는 억조창생을
어루만졌다. 처음은 무공으로써 해내를 통일하고 나중
에는 문덕으로써 遠人을 회유하도다. 동으로는 청구를
넘고
南踰丹교.皆獻琛奉贄.重譯來王.西기輪臺.北拒玄闕.竝地
列州縣.人充編戶.氣淑年和.邇安遠肅.群生咸遂.靈황畢臻.
남으로는 단교를 넘어 구슬을 드리고 폐백을 받들어 통역을 거듭하여 來王하다. 西로는 輪臺까지 미치고 북은 현궐에 이르기 까지 기운은 맑고(氣淑) 연사는 풍년이어서(年和) 가까운데는 편안하고 먼데는 조용하여 온누리 다 잘살고 신령의 베품이 다 이르렀으니,
雖藉二儀之功終資一人之慮. 遺身利物.櫛風沐雨.百姓爲心.
憂勞成疾.同堯肌之如석.甚禹足 之변지.針石屢加.주理猶滯
비록 음양(二儀)의 공을 빌린다 하지만 결국 온 몸은 치지 않고 물을 이롭게하고 바람에 빗질하고 빗물에 목욕하며 백성을 마음으로 하고 근심하여 수고로운 병이 된 것은 요임금의 살결이 고기포와 같고,우임금
발의 굳은살(변지)보다 심하여 침석을 자주 가했어도 주리가 유체하다
爰居京室.每弊炎暑.群下請建離宮.庶可怡神養性.聖上愛一夫 之力.
惜十家之産.深閉固拒.未肯俯從.
지금 경실에 있어서는 늘 염서에 시달려 지치니
군하가 청하기를 이궁(離宮)을 세우면 바라건대 신령을 즐겁게하고 성상은일부의
힘을 귀히하고 십가지산(十家之産)을 아껴서 깊게 닫고 굳이 마다하여 즐겨 부종치 않았다.
以爲隨氏舊宮.營於?代.棄之則可惜毁之則重
勞.事貴因循.何必改作.於是?彫爲樸.損之又
損.去其泰甚.葺其頹壞.雜丹?以沙礫.間粉壁以
塗泥.玉?接於土階.茅茨續於瓊室.仰觀壯麗.
可作鑒於旣往俯察卑儉.足垂訓於後昆.
말하기를 수씨(隨氏)의 구궁(舊宮)은 예전에 지었으니 이것을 버리면 아까울만 하고 이것을 헐려면 품이 겹친다.일은 인순(因循)을 귀히 하니 어찌 반드시 개작(改作)하겠는가. 이때에 착조(?彫)하기를 검소하게 하고 덜고 또 덜어서 그 태심(泰甚)을 버리고 그 퇴괴(頹壞)를 기워서 단지(丹?)를 사력(沙礫)으로써 섞어하고 분벽(粉壁)은 도니(塗泥)로써 하고,옥체(玉?)는 토계(土階)에 접하였으며, 모자(茅茨)가 경실(瓊室)에 이어졌으니,우러러 장려함을 보면 기왕이 거울이 될만하며,굽혀서 비검(卑儉)함을 살피면 족히 후손에 수훈(垂訓)할 수도 있다.
此所謂至人無爲.大聖不作.
彼竭其力我享其功者也.
이것은 이른바 지극한 사람은 하는 바가 없고 대성은 짓지 않은 것이니
그는 힘을 다했고 나는 그 공을 누린 자이니라.
[출처] 구성궁 예천명 <본문해석>|작성자 열린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