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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너무 심한 '나로호거짓말'

나그네46 2010. 6. 13. 14:46

 [조선일보 2010.6.12. A30면 백승재 과학팀장의 데스크칼럼을 스크랩했다.]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습니까?"
   정운찬 총리가 10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나로호 2차 발사 현장에서 던진 이 말은 한국 우주개발사(史)에서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정 총리는 이날 나로우주센터 통제센터(MDC)에 참석한 정부 최고위 관료였다.
   5시 1분 발사 직후 통제센터는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발사 8분 24초 후 나로호와의 통신 두절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18분쯤 지나자 모두가 말을 삼가는 분위기가 됐다. 30분쯤 지나자 정 총리가 적막을 깨기 위해 이 말을 던지고 박수를 유도했다. 참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정 총리의 임기응변도, 박수도 사실은 헛된 것이었다. 참관석 너머 블라인드로 분리돼 있는 통제실에서는 연구원들이 이미 수군대고 있었다. 통신 두절 직전까지 나로호는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내왔는데, 1단 로켓 아래를 촬영한 영상은 마지막 순간 하얀 섬광이 번쩍였다.
   레이더 추적장치는 이미 발사 후 137.19초, 고도 70㎞ 지점서 나로호가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물론 참관객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현장의 기술진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관계자는 "11차례 56시간 후에 교신 성공한 사례도 있다"며 참관객의 기운(?)을 북돋웠다. 결국 나로호 2차 발사 참관 현장은 비극(悲劇)과 촌극(寸劇)이 뒤섞인 블랙코미디가 돼 버렸다.
   이날의 광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징한다. 국민들은 이날 참관객들처럼 우주개발을 응원할 마음이 충분하다. 9일과 10일 전남 고흥에는 나로호 2차 발사를 지켜보기 위해 1만여명이 몰렸다. 그러나 당국과 과학자들이 양심에 입각해 올바른 현실을 제때 소통하지 않고 침묵하면 국민들은 정 총리처럼 순식간에 코미디 배우가 돼버린다. 일반인들이 복잡한 현대 과학기술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로호 발사에 두 번 실패한 지금, 당국이 과연 우주개발에서 소통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재발사 조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차 발사 전 교과부 관계자들은 "2회 발사하고, 실패하면 한번 더 발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발사에 실패하니 사정이 달랐다. 러시아가 재발사를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나로호 1차 발사 직후 자신들이 만든 1단 엔진은 성공했으며, 한국 기술로 만든 페어링(위성보호덮개) 문제로 궤도진입에 실패한 것이므로 재발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나왔다. 그러자 교과부 관계자들은 "사실은 계약에 '발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만 돼있다"고 털어놨다.
   작년 7월 나로호 1차 발사가 같은 해 8월로 갑자기 연기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 6월 나로호 1단 엔진이 들어오자 교과부와 항우연은 "엔진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7월 15일 러시아측이 "엔진 연소 시험 준비 과정에서 이상이 생겼다"며 발사일자를 늦추자고 통보해온 것. 1차 발사 실패 때도 지금과 비슷한 거짓말이 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아닌 과학자들이 이렇게 뻔한 거짓말, 곧 탄로날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우주 개발을 한다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