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또 다른 삶)
새영화 "위대한 침묵"
나그네46
2009. 12. 5. 01:12
60대 남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농담. 50대에는 골프나 바둑채널만 보고, 60대에는 동물 다큐멘터리밖에 볼 게 없고, 70대가 되면 불교TV만 본다. 고요한 산사에 가끔 풍경만 딸랑거리는 채널이 가장 낫다는 것이다.
3일 개봉할 '위대한 침묵'은 이 농담 속 70대가 꿈꾸는 영화랄 수 있다. 프랑스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사계절을 담은 이 작품은 침묵 그 자체다. 수도사들이 침묵하니 자연의 모든 소리가 바늘처럼 돋아난다. 좀 과장하면, 이 영화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눈이 내리고 기도소리와 종소리가 들릴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2시간42분이다. 영화를 고를 때 '재미'를 최우선으로 삼는 관객은 10분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필립 그로닝 감독이 1984년 촬영을 처음 제안하고 15년이 지난 99년에서야 허락을 받아낸 이 영화에 몰입한 사람은 고요와 침잠에 이은 각성을 얻을 것이다.
2002년부터 이듬해까지 4회에 걸쳐 6개월간 알프스 중턱에 있는 수도원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찍은 감독은 모든 작업을 혼자서 했다. 수도원은 "인공조명을 쓰지 말 것, 어떤 음악이나 인공적 소리도 쓰지 말 것, 수도원의 삶에 대한 어떤 논평도 하지 말 것, 영화제에서 공개하되 경쟁부문에 나가지 말 것" 등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 조건들마저 맘에 든다면, 꼭 극장의 어둠 속에서 보기를 권한다. ▣
[조선일보 2009.12.3.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