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론,에피소드

리허설(Rehearsal)- 요리하는 주방을 들여다 보는 것.

나그네46 2008. 8. 7. 12:02

  "만약 피곤해서 그렇다면 납득하겠지만, 여러분 해석이 원래 그런 거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1965년 슈투트가르트의 남서독일 방송 교향악단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을 연습하던 지휘자 첼리비다케(Celibidache ·1912~1996)는 연주를 멈추게 한 뒤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잘할 수 있는데 어쩌다 못하는 거라면 이해하지만, 원래 실력이라면 한심하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혼내는 게 낫지, 실제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설 것 같습니다. 최근 이 리허설 영상(DVD·이클라세)이 국내 소개됐습니다.
   리허설 도중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이렇게도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4분의 3은 적절한 피아니시모(아주 여리게)로 연주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는 자신이 너무 튀게 연주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네요." 누가 4분의 1에 속하는지 알리지 않은 채, 넌지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말년에 일본 문화와 불교에 심취해서 '젠(禪) 마스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마흔셋의 지휘자는 맹렬하기 그지없습니다.
   지휘자는 리허설에서 '당근과 채찍' 전략을 모두 구사합니다. 방금 전까지 마치 쥐라도 잡듯이 단원들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첼리비다케는 연주가 마음에 들자 거꾸로 놀란 듯 둥그렇게 눈을 뜨면서 "제1바이올린은 아주 아름답고 지적으로 연주했어요. 베이스도 좋았습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럴 때 또한 마음을 풀지 않을 단원이 있을까요.
   연주회가 아니라 리허설부터 첼리비다케는 이미 악보를 암기하고 지휘대에 올라옵니다. 지휘자는 단원들과 함께 연주할 마디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질 뿐 음표의 높이와 강세, 뉘앙스까지 모두 머리속에 담고 있습니다. 교과서를 바라보지도 않고 본문뿐 아니라 그래픽과 사진 설명, 각주까지 외우고 있는 선생님만 같습니다. 수많은 '지휘자 신화(神話)'는 이럴 때 탄생합니다.
   그가 장악하고 있는 건 단지 악보만이 아닙니다. 독일 민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부터 주인공의 심리까지 일일이 설명하면서, 왜 그렇게 연주해야 하는지 첼리비다케는 단원들을 납득시킵니다.
   콘서트에서 지휘자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실제 지휘자마다 연주에 차이가 나는 걸까?"라고 질문합니다. 하지만 지휘자는 청중에게 전달하기 이전에, 리허설에서 단원들을 설득하고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는 물 위에 떠있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만을 바라볼 뿐이지요.
   멋진 식당에서 훌륭한 요리를 맛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때로는 실제 조리 과정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리허설은 한창 뜨겁게 요리하고 있는 주방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뒤에 요리를 맛보는 기분은 더욱 남다르겠지요.
    ▣ (조선일보2008.8.7. 공연면A18에서 퍼옴)